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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siquetan 보듣만고생/그리고생각한것들

시원해서 섭섭한 영화, 베테랑

ㅡ시원해서 섭섭한 영화, 베테랑


사회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혈기 왕성한' 20대들의 고민은 이것일지도 모르겠다. 사회가 '원래' 그런 건데 예전엔 내가 어려서 몰랐던 건지, 아니면 요즘들어 내가 느낄 수 있을만큼 사회가 '비정상화'된 건지 판단이 안 서는, 그런 고민. 나도 우리 사회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독자들로부터 100%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 우리 사회가 모든 부분에서 완벽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두자.



류승완 감독/각본, 황정민, 유아인, 유해진, 오달수, 장윤주, 정웅인 출연의 2015년작 영화 베테랑은, 그 사회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지적하는 이상한 것들 중 몇 가지를 쓰러지지 않게 잘 쌓아 올린 다음에, 발로 뻥 차버리는 영화다. 발로 뻥 차고, 밟고 남은 잔해들을 태워버리는 속 시원한 영화다. 마치 토리야마 아키라의 드래곤볼에서 오천크스와 피콜로가 그랬던 것 처럼. 근데 그 다음에 드래곤볼이 어떻게 전개되었더라? 문제 해결이라는 것은, 차후 재발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데까지가 그 범위다. 법이 왜 있고, 처벌이 왜 있나? 죄 지은 사람은 교화시켜 다시 죄를 안 짓게 하고, 일반인들이 죄 짓지 않도록 경각심을 주기위해 있다. 더욱이 이제막 문제를 인식하고 법조문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영화 속에서, 기상천외한 잘못들이 참 '현실적'이고, 죄 지은 사람이 기가 막히게 빠져나가는 것이 참 현실적이다. 잘못을 잘못으로 자각하지 못하는 것까지 현실적이다. 서도철은 '잘못은 하지 말아라', '야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어? 가오 떨어지는 짓 좀 하지 말자', '죄 짓고 살지 말아라, 사과하면 끝나는 일을 왜 더 큰일로 덮으려 해?' 등의 속 시원한 말을 하며 나쁜놈들 뒷통수를 한 대씩 때려준다. 참 시원하게, 참 '비현실적'으로. 어떤 이상적인 세상에, 시간이 갈 수록 가까워져야하는데, 이거야 원 애초에 판이 뒤집어져있다. 이상적인 것이 현실에서 가장 먼 곳에, 비이상적인 것이 현실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서도철은 '판 뒤집혔다'고 말하지만, 카메라가 뒤집어져도 영화보던 내가 천장으로 떨어지는 건 아니다.


그래가지고 이 속시원하면서, 시원시원하면서, 뻔한 영화를 보면서 가장 궁금했던건 그거다. 해피엔딩일까? 배드엔딩일까? 나야 학교에서 배우기로는, 사회참여적 이야기장르가 성립하려면 무조건 배드엔딩이어야 한다고 배웠다. 해피엔딩이면 모든 갈등이 해소되고 이야기가 이야기 안에서 마무리되지만, 배드엔딩이어야만 그 바통(배턴)이 독자, 관람객에게 넘어간다고. 씨네21의 평론가 이용철은 베테랑에 대해 이런 한 줄 평을 남겼다. '통쾌하다. 단, 극장 나오기 전까지만'.


상온이 시원해지지 않으면 부채질 한 번 해봤자다. 온도 자체를 내릴 방법이 없으니, 부채질에만 중독 된다. 한 번, 두 번, 세 번 계속해서 부채질을 하다보면 시원해진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그게 때론 열사병에서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말이다. 손석희나 장도리 박순찬 등이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속 시원하게 긁어줄 때마다 이런 생각을 했다. 이건 그냥 속만 풀어주는게 아닐까? 바뀌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이 속만 풀리는 것, 차라리 속이 안 풀렸다면 바꾸자고 나서지 않았을까?


상온이 떨어지길 바라는 사람으로서, 해피엔딩이 아니어야된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간접 체험할 수 있어서 통쾌했다. 너무나 너무나 너무나. 열사병에 걸릴 정도로 더운가보다.




류승완 감독/각본, 강혜정 제작, 황정민, 유아인, 유해진, 오달수, 장윤주, 정웅인, 마동석 출연, 외유내강 제작사, CJ 엔터테인먼트 배급


여자들이 유해진 멋있다 멋있다 하던데, 아 수트에 안경끼고 단정한 머리 한 모습에 진짜 수긍했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 천만 관객 돌파 '베테랑'에 영감을 주었을 실제 사건 3가지 (2015.08.06)

http://www.huffingtonpost.kr/2015/08/06/story_n_794582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