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masiquetan 보듣만고생/그리고생각한것들

맛있는 녀석들은 밥을 너무 맛있게 먹는다

ㅡ맛있는 녀석들은 밥을 너무 맛있게 먹는다


이제까지 수 많은 먹방프로그램이 있었다. 6시 내고향이나, 지상파 3사의 아침, 그리고 저녁 시간대 프로그램, VJ특공대 등 장수프로그램을 비롯해서 사유리의 식탐여행, 정준하의 식신 원정대, 식신로드, 그리고 최근 인터넷 방송 BJ들에 의한 먹방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의식주 중에서도 가장 주목을 받는 방송 프로그램은 먹방이었다.


나는 이런 먹방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 프로그램들의 패턴이랄 것이 수십년간 별다를 것이 없었고, 맨날 먹으면서 맛있다는 말 밖에는 할 것이 없고, 그나마도 무슨 담백하다든지 이런 와닿지도 않는 요상한 말로 음식과 요리를 포장하기 바빴다. 먹는 것의 주안점은 대체로 '맛'인데, 인간의 감각,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 등 중에서도 비교적 감각이 세밀하지 못한 후각, 미각을 다루면서도, 직접 맛 볼 수 없는 방송매체의 특성상 화면이나 소리, 언어적 표현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하려니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먹을 것은 '맛있으면' 끝이다. 우리가 어디 맛집 가서, 아무리 맛이 뛰어나도 '이 집 진짜 맛있네' 말고 다른 할 말이 있었던가? 가장 솔직하고 제대로 된 표현은 '맛있다'이지만, 맨날 먹방하면서도 이런 말만 지겹게 할 수는 없으니, 담백하다든지 아니면 그보다 더 훨씬 오바한 옛 고향의 맛이 난다든지 이런 뜬구름 잡는 얘기를 할 수 밖에 없고, 시청자가 공감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개중에서도 사유리의 식탐여행이나 테이스트 로드는 음식을 소재로 다루면서 다르게 풀이해 인기를 얻었다. 사유리의 식탐여행은 방송인 후지타 사유리의 캐릭터성에 기댄 연출, 박수진, 김성은, 리지의 테이스티 로드는 출연자들의 미모와, 음식점의 인테리어, 화면에 예쁘게 담긴 그릇과 요리등 미술적인 연출로 인기를 끌었다. 두 프로그램 다 음식은 소재로서의 역할만을 했던 것 같다. 뭐 요리는 눈으로도 먹는다고 그러니.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인터넷 방송 BJ들의 먹방은, 무엇을 먹느냐보다도 얼마나 먹느냐, 이른바 푸드파이터스러운 묘기가 주안점이다. 여기서는 음식이 사실상 중요하지가 않다. 뭘 먹느냐는 전혀 주목 요소가 아니다. 음식의 가장 중요한 점은 '맛'임에도, 그 맛을 전달할 수 없으니, 맛에 집중한 프로그램은 그저그랬고, 위에서 언급한 사유리, 박수진, 인터넷BJ들의 맛 외의 다른 요소를 부각시킨 프로그램이 대세가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식사는 다르다. 식사는 맛있는 것 만으론 안된다. 배가 불러야한다. 식사라는 것은, 반찬 등의 요리로만 구성할 수는 없고, 반드시 밥이 있어야하며, 입체적인 음식들의 상차립과 조합이 중요하고, 순간적인 맛 보다 식사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 과정과 시간이 중요하다. 만족스러운 식사 후 우리가 하는 말은 '맛있게 먹었다'가 아니라 '배부르게 먹었다'이다.



Comedy TV(코미디TV)에서 방송하는, iHQ제작의, 박승호CP, 김대웅, 이영식, 박주은, 이은정 PD, 유민상, 김준현, 김민경, 문세윤 출연의 '맛있는 녀석들'은 참 볼만하더라. 이 감상문이라는게 내가 생각한 시점보다 한참 늦었다는 것은 좀 아쉽지만. 


한동안 이슈가 되던시기는 지났지만, 그래도 이제까지의 먹방 프로그램 중에 최고의, 그리고 제대로된 프로그램이 '맛있는 녀석들'이 아닐까 싶다. 이 프로그램이 이제까지의 프로그램과 가장 차별되는 것, 이 프로그램은 밥을 너무 맛있게 먹는다는 것이다.


한식의 메인은 누가 뭐래도 밥이다. 김치 없는 식사? 국 없는 식사? 고기 없는 식사? 이런 것은 존재할 수 있지만, '밥'이 없는 식사란 개념적으로 성립하지가 않는다. 외국식의 빵을 밥으로 치지 않는 것은 그렇다고 해도, 심지어는 밥을 대체하는 것 중 하나인 국수 등의 면 요리를 먹고도, 밥이 아니기 때문에 끼니로 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밥은 상차림의 주인이자, 먹는 행위 모든 것을 대표한다. 참은 걸러도 밥을 거를 수는 없다. 반말 밥 먹었어?에도 밥이 들어가고, 존댓말 진지 잡수셨어요?에서 진지도 밥의 높임말이다. 식사는 끼니로 먹는 음식이나 그 행위를 뜻하며, 끼니는 아침 점심 저녁 등 매일 일정한 시간에 먹는 '밥'을 뜻한다. 밥이 주인공이고 밥이 킹왕짱이다.


모든 요리는 한식에선 반찬이다. 반찬은 밥을 먹는데 도움을 주고 밥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게 해주는 조연에 지나지 않는다. 밥의 존재감이 이럼에도, 이제까지의 먹방 프로그램은 그럼에도 밥이 아니라 요리에만 집중해왔다. 영화 한 편 실컷 보고도 주연이 아닌 조연이 어땠는지를 따지는 꼴이며, 뮤지컬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에서 주연과 노래(넘버)는 배제한 채 조연이나 코러스, 극장 시설 등만 집중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맛있는 녀석들의 최고 하이라이트는 밥 먹는 장면이다. 먹보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끼 식사하는 장면, 다시말해 밥먹는 것이 볼만하고, 공기밥을 뚝딱 비우는, 다시말해 밥먹는 것이 볼만하고, 밥 한숟갈을 양껏 떠서 단단하게 숟가락으로 빚어 만들어 먹는 것, 다시말해 밥먹는 것이 볼만하다.


맛있는 녀석들은 밥을 너무 맛있게 먹는다. 다른 맛집 프로그램을 보면, 다음에 저기 한 번 가봐야지, 혹은, 저거 맛 없는데 방송이라 오바하는 거 아닐까?라는 생각만이 든다면, 맛있는 녀석들은 한끼 제대로된 식사를 양껏하고싶게 만든다.


통통하게 윤기가 도는 뜨거운 쌀밥, 그것을 숟가락으로 잘 눌러서 한입 야무지게 입에 밀어 넣는다. 알알히 씹히는 쫀득한 쌀밥과, 거기서 퍼져나오는 뜨거운 수증기가 우리 배를 따뜻하게 하면서도 포만감을 준다. 찬밥이 찬밥취급이고, 식은밥이 식은밥 취급이고, 오로지 모락모락 김이 나는 갓 지은 밥만이 진정한 밥으로 대접받을 수 있다.


맛있는 녀석들에서는 먹방, 맛집 프로그램에서 잊고 있었던, 심지어 우리들 모두가 잊고 있었던 밥이 존재감을 발한다. 현대인들 주변에 너무나도 많은 먹거리와, 많은 먹을 기회가 있지만, 어딘가 허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밥을 빠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빠서? 다이어트하느라? 빨리 먹고, 적게 먹고, 거르고, 찬밥 먹고, 식은밥 먹고, 군것질로 때우고 뭘로 때우고, 먹기는 먹되 가장 중요한 밥을 소홀히 했기 때문에 항상 마음 어딘가가 비어있었던 것이다. 밥맛이 없으니, 맛있게 먹겠다고, 오늘은 제대로 먹겠다고 하면서도 반찬 등의 요리에만 고심했으니, 밥상의 주인공보다도 매일 왔다가는 손님에만 신경을 썼으니, 비싼돈주고 시간내어 멀리 찾아가서 먹어도 만족스럽지가 못했었던 것이다.


나도 그동안 한국인의 기술을 뽐내며 젓가락으로만 밥을 먹은지가 꽤 되었던 것 같다. 몇년 되었던 것 같다. 맛있는 녀석들에서 김준현이 그랬던 것 처럼 밥공기에 '숟가락'을 들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을 잘 뭉쳐 한술 크게 떠서 입에 잽싸게 넣어보았다. 이제야 제대로 된 식사로 허한 마음이 한술 한술 채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