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시원해서 섭섭한 영화, 베테랑
사회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혈기 왕성한' 20대들의 고민은 이것일지도 모르겠다. 사회가 '원래' 그런 건데 예전엔 내가 어려서 몰랐던 건지, 아니면 요즘들어 내가 느낄 수 있을만큼 사회가 '비정상화'된 건지 판단이 안 서는, 그런 고민. 나도 우리 사회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독자들로부터 100%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 우리 사회가 모든 부분에서 완벽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두자.
류승완 감독/각본, 황정민, 유아인, 유해진, 오달수, 장윤주, 정웅인 출연의 2015년작 영화 베테랑은, 그 사회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지적하는 이상한 것들 중 몇 가지를 쓰러지지 않게 잘 쌓아 올린 다음에, 발로 뻥 차버리는 영화다. 발로 뻥 차고, 밟고 남은 잔해들을 태워버리는 속 시원한 영화다. 마치 토리야마 아키라의 드래곤볼에서 오천크스와 피콜로가 그랬던 것 처럼. 근데 그 다음에 드래곤볼이 어떻게 전개되었더라? 문제 해결이라는 것은, 차후 재발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데까지가 그 범위다. 법이 왜 있고, 처벌이 왜 있나? 죄 지은 사람은 교화시켜 다시 죄를 안 짓게 하고, 일반인들이 죄 짓지 않도록 경각심을 주기위해 있다. 더욱이 이제막 문제를 인식하고 법조문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영화 속에서, 기상천외한 잘못들이 참 '현실적'이고, 죄 지은 사람이 기가 막히게 빠져나가는 것이 참 현실적이다. 잘못을 잘못으로 자각하지 못하는 것까지 현실적이다. 서도철은 '잘못은 하지 말아라', '야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어? 가오 떨어지는 짓 좀 하지 말자', '죄 짓고 살지 말아라, 사과하면 끝나는 일을 왜 더 큰일로 덮으려 해?' 등의 속 시원한 말을 하며 나쁜놈들 뒷통수를 한 대씩 때려준다. 참 시원하게, 참 '비현실적'으로. 어떤 이상적인 세상에, 시간이 갈 수록 가까워져야하는데, 이거야 원 애초에 판이 뒤집어져있다. 이상적인 것이 현실에서 가장 먼 곳에, 비이상적인 것이 현실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서도철은 '판 뒤집혔다'고 말하지만, 카메라가 뒤집어져도 영화보던 내가 천장으로 떨어지는 건 아니다.
그래가지고 이 속시원하면서, 시원시원하면서, 뻔한 영화를 보면서 가장 궁금했던건 그거다. 해피엔딩일까? 배드엔딩일까? 나야 학교에서 배우기로는, 사회참여적 이야기장르가 성립하려면 무조건 배드엔딩이어야 한다고 배웠다. 해피엔딩이면 모든 갈등이 해소되고 이야기가 이야기 안에서 마무리되지만, 배드엔딩이어야만 그 바통(배턴)이 독자, 관람객에게 넘어간다고. 씨네21의 평론가 이용철은 베테랑에 대해 이런 한 줄 평을 남겼다. '통쾌하다. 단, 극장 나오기 전까지만'.
상온이 시원해지지 않으면 부채질 한 번 해봤자다. 온도 자체를 내릴 방법이 없으니, 부채질에만 중독 된다. 한 번, 두 번, 세 번 계속해서 부채질을 하다보면 시원해진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그게 때론 열사병에서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말이다. 손석희나 장도리 박순찬 등이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속 시원하게 긁어줄 때마다 이런 생각을 했다. 이건 그냥 속만 풀어주는게 아닐까? 바뀌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이 속만 풀리는 것, 차라리 속이 안 풀렸다면 바꾸자고 나서지 않았을까?
상온이 떨어지길 바라는 사람으로서, 해피엔딩이 아니어야된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간접 체험할 수 있어서 통쾌했다. 너무나 너무나 너무나. 열사병에 걸릴 정도로 더운가보다.
류승완 감독/각본, 강혜정 제작, 황정민, 유아인, 유해진, 오달수, 장윤주, 정웅인, 마동석 출연, 외유내강 제작사, CJ 엔터테인먼트 배급
여자들이 유해진 멋있다 멋있다 하던데, 아 수트에 안경끼고 단정한 머리 한 모습에 진짜 수긍했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 천만 관객 돌파 '베테랑'에 영감을 주었을 실제 사건 3가지 (2015.08.06)
http://www.huffingtonpost.kr/2015/08/06/story_n_794582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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