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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iquetan 라이프로그/에세이 - 다시 쓰기

[에세이] UD ON

ㅡ [에세이] UD ON


  청량리 성심병원 정류장에서 버스를 내렸다. 내려 걸으며 식사할 곳을 찾았다. 마땅한 곳이 없었다. 술집 아니면 고깃집. 혼자 들어가 간단하게 밥 먹고 나오기에는 망설여지는 곳들이었다. 계속 길을 가다가 '마카나이'라는 일식집을 발견했으나, 대학생들로 가득 차 들어갈 곳이 없었다.

  길을 돌려 다시 내려가는데 'UD ON'이라는 집을 발견했다. 방금 걸었던 길인데, 아까는 발견하지 못했던 곳이다. 바로 옆 가게와 달리, 이 식당은 손님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이 식당에 들어가기로 했다.

  할머니도 아줌마도 아닌 사람이 나를 맞아주었다. 나는 뭐가 맛있냐고 물었다. 나가사키 우동도 잘 나가고 유부우동도 잘 나가고 닭볶음덮밥도 잘 나간다고 했다. 밥이 먹고 싶어서 닭볶음덮밥을 달라고 했다.

  옆 가게는 만원인데 여기는 왜 이렇게 텅텅 비었을까. 차마 물어볼 수는 없었다.

  몰랐는데, 가게에서 엑스재팬의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렛미포겟 어쩌고 하는 노래인데 제목은 잘 생각이 나질 않는다. 제목을 생각해보는 사이, 얼마나 맵게 해주냐고 내게 묻길래, 쫌 맵게 해달라고 했다.

  핸드폰 좀 보다가 가게를 살펴보았다. 미스터초밥왕 만화책이랑 김전일 만화책 베르나르베르베르 상식사전인가 하는 책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밥을 기다리는 동안 책을 보기도 애매하고 밥 먹으면서 보기도 애매했다. 다들 나처럼 애매하게 여길텐데 뭐 하러 갖다 놓았을까.

  가게에 걸린 가게 로고가 거창하게 세련됐다.

  밥이 나왔다. 그릇을 돌리려고 잡았는데 뜨거웠다. 뜨거우니 거기 말고 손잡이를 잡으라는데, 나는 이미 손잡이를 잡았었다. 주인이 밥이 모자르지 않을지 물었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음식은 뜨거웠다. 그러나 그냥 심심한 맛이었다.

  밥이 모자르면 더 달라고 말하라고 했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만약 손님이 더 왔는데 식당에 밥이 없으면 이상할 것 같냐고 내게 물으며 밥을 좀 더 해야겠다고 했다. 나는 그냥 웃고 말았다.

  물을 달라고 했는데, 컵이랑 물병 하나 꺼내줄 줄 알았더니 테이블 끝에 있는 정수기에서 컵에 물을 받아다 주었다. 괜히 심부름시킨 것 같아 나는 미안했다. 다음 잔은 내가 가서 떠다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밥을 계속 먹는데, 쌀을 사 오겠다며 나보고 가게를 봐달라고 했다. 그 사이 여자 손님이 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밥을 다 먹고 계산하려고 기다리고 있다가, 쌀을 사가지고 들어온 사장님한테 계산을 부탁했다. 주머니에 500원짜리가 하나 있어서 오랫만에 현금으로 계산을 했다. 가격은 6500원이었다. 비싸서 대학생들이 안 오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나에게 쿠폰을 만들라고 했다. 나는 이 동네에 잘 올 일이 없었다. 나는 이 동네 잘 올 일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도 도장을 하나 찍어 내게 줬다. 도장 찍는 쿠폰은 보통, 도장을 찍을 칸이 그려져 있는 것 같았는데 여기는 그러지 않았다. 이 쿠폰에 도장 열 개 찍으면 옆 카페에서 아메리카노가 무료라고 했다. 열 다섯 개를 찍으면 또 뭐가 무료라고 했는데 생각이 안 난다.

  쿠폰에 로고가 이상해서 보니, 똑같은 로고인데 글자만 다르게 Cafe ON이라고 씌어있었다. 그리고 UD ON에서도 도장을 찍을 수 있다고 쓰여 있었다.

  사장님이 나보고 사탕 하나 먹으라고 했다. 뭘 먹을까 하다가 초콜릿맛 사탕을 집었다. 맛없기로 유명한 초콜릿 사탕인데 웬일인지 맛이 괜찮았다. 인사를 하고 나왔다. 또 오라고 했다.

  가게에 나와서 가게 간판을 보니까 써있기는 UD ON이라고 써있었는데 이제 보니 우동이었다. 히라가나로도 우동이라고 써있었다. 이제 보니 우동집이다. 문득 우동 맛이 궁금해졌고, 뭔가 묘한 기분이 들어 글을 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