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asiquetan 라이프로그/에세이 - 다시 쓰기

[에세이] 도서관에서 인생 빌리기

ㅡ [에세이] 도서관에서 인생 빌리기

 

 

  운이 안 좋았다. 자려고 누워있다가 갑자기 생각이 떠올라서 어떤 책을 찾았다. 잘 시간인데도 한참을 찾다가, 여기에도 없으면 없는 것이겠지 하고 마지막으로 살펴본 곳에서 그 책을 찾을 수 있었다. 책을 꺼내는데 잃어버린 MP3 플레이어가 딸려 나왔다. 여기 있었구나. 언제 잃어버렸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먼지가 달라붙어 있었다. 전원을 켜고 저장되어있는 노래를 재생시켰다.

 

  다른 예술 장르와 비교했을 때 음악만이 가진 단점은 잠을 잘 시간에 곧잘 부각된다. 책이나 영화는 한 번 보기 시작하면 두 시간은 봐야 하니까 잘 시간엔 엄두를 안 내게 된다. 그림은 한 작품에 5초면 다 보니까 금방 보고 자도 된다. 그런데 음악은 5분이다. 5분 정도는 늦게 자도 될 법하면서도,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한 시간은 금방 넘어버리고 만다. 5분씩 열두 곡만 들어도 한 시간이다. 

  그런고로 아침잠이 이렇게 내 몸에 달라붙게 된 것이다. 어젯밤 MP3의 먼지처럼 달라붙어서 결국 오늘 새벽에야 잠에 들 수 있었다. 그나마 자다가도 몇 번인가 깬 것 같았다. 아침 시간에 여유가 있던 적은 잘 없지만 오늘은 조금 더 서둘러야 했다. 우리 동네에서 학교까지 가는 버스 노선은 하나뿐이다. 그 버스를 놓치면 넓은 배차간격만큼 딱 허송세월 해야 한다. 시간이란 게 가기만 잘 가지 기다려주는 법은 없다. 특히 출석체크 시간 같은 것들. 아, 버스의 도착시간 같은 것도.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길목의 횡단보도 앞에 섰다. 옆으로 내가 타야할 버스가 나란히 섰다. F1 자동차 경주의 프론트 로에 선 출발 순위 1,2위 간의 긴장감이다. 내가 먼저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면 나는 버스를 탈 것이고, 버스가 먼저 도착하면 버스는 지체 없이 떠나버릴 것이다.

 

  이 시간 이 정류장을 통과하는 버스 기사 아저씨는 승부사로 유명했다. 정류장에 서있는 사람이 없다면 속도도 안 줄이고 그냥 지나쳐버리는 음속의 기사였다. 버스니까 금속의 기사이기도 했다. 녹색 신호가 들어오는 순간 금속처럼 매정한 버스와 나는 가속을 시작했다. 

 몇 발 뛰는데, 차 한 대가 횡단보도로 불쑥 튀어나왔다. 왜 요새는 양심냉장고 안주냐고 시위라도 하듯이. 그 차에 가로막힌 찰나에 버스는 나를 앞질러 갔다. 이거 놓치면 정말 지각인데. 꺼져가는 희망을 챙겨서 다시 뛰어봤다. 버스에 탈 것이라는 강한 암시를 주기 위해 버스카드를 손에 들고 버스 쪽으로 내밀어 봤다.

 

  바람에 응답하는 것처럼 버스가 정류장에 멈췄다. 이상하다 멈춰줄리가 없는데. 기회를 놓칠세라 앞문을 향해 뛰어가는데 뒷문이 열렸다. 내리는 사람이 있었다. 승부사도 내리는 사람이 있을 땐 멈추고 말았다. 버스에 타보니 앉을자리가 딱 한 자리 있었다. 지각도 면제해주고 편히 가라고 자리까지 마련해 준 하차객은 버스의 요정이 아니었을까.

  버스에 탔으니 안심이었다. 거짓말 같은 승전보를 페이스북에 알리기 위해 핸드폰을 켰다. 핸드폰에 눈에 띄는 메모가 있었다. '도서관에서 인생 빌리기'. 새벽에 잠결에 적어놓은 메모 같았다.

 

  도서관에서 인생 빌리기. 이게 무슨 뜻이지. 새로 쓸 소설의 소재로 떠올랐던 것일까. 잠결에 생각난 소재는 다음날 보면 쓸모 없는 경우가 많은데, 이 메모는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뭔가가 나올 듯 말 듯한. 잘하면 시리즈물로도 만들 수 있을 것만 같은 소재였다. 

  그런데 무슨 의미로 도서관에서 인생을 빌린다는 메모를 해놓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책장에 책이 꼽혀있듯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이 보관되어 있고 그 인생을 빌린다는 의미인가. 아니면 인생이 아니라 그냥 일반적인 책이 꼽혀있는데, 책을 빌리면 사이코메트러처럼 저자의 인생을 빌릴 수 있다는 것일까. 인생은 빌리는 순간 그 자리에 펼쳐지는 걸까 아니면 빌려서 도서관 밖으로 나와야 하는 걸까. 빌린 그 사람의 인생을 체험하게 되는 것일까, 내 인생에 빌린 인생이 끼어들게 되는 것일까. 인생을 빌려서 뭘 할 수 있을까. 

  커다란 상상을 한 문장으로 축약시킬 정도로 잠의 힘은 강했나보다. 한 문장을 보고 상상을 복원해야 할 깬 정신의 힘 보다도 강했나 보다.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자다가 메모까지 할 만큼 대단했을 상상. 뭐였을까. 파고들수록 손에 잡힐 듯이 잡힐 듯이. 문이 열렸다. 내려야 할 정류장의 문이 열렸다. 

  급하게 내리는 와중에도 하차태그는 잊지 않았다. 10여년을 찍었으니 이젠 척수 반사로 하차태그를 하는 것 같다. 자리에서 일어남과 동시에 카드를 뽑았다. 짜르릉. 주머니에서 동전이 떨어졌다. 소리를 들어보니 100원 동전 다섯 개는 떨어진 것 같았다. 카드를 대면서 몇 개를 줍는 사이, 승부사 아저씨는 문을 닫았다. 운전석을 돌아보며 재빨리 소리쳤다. 아저씨 내릴게요.

 

  내가 동전을 확실히 다섯 개를 떨어트렸다면 아직 두 개를 못 주웠을 것이다. 문득 버스 출발시간이 늦어지는 것의 비용과 200원의 가치 중 어떤 것이 더 클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리는 발걸음을 내디뎠다. 내가 앉아있던 자리 밑에 떨어져 있을 동전을 눈으로 훑으며 200원이 더 무가치하길 바랐다. 

  강의시간에 뜬금없이 예정에 없던 2인 팀플을 하게 되었다. 그냥 아무나, 혼자 앉아 있는 사람이 있길래 같이 팀을 하기로 했다. 그 여자애는 나보다 한참 후배였다. 큰 의미 없는 팀플이었다. 나는 내 학번을 말하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이름을 묻지 않았다. 교수님의 서로에 대한 질문 요구에도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강의가 끝났다.

 

  어디 가냐고 내게 묻길래 점심 먹으러 간다고 했다. 같이 가도 되냐고 묻기에 그러라고 했다. 또래끼리에 김치볶음밥을 먹으러 가는데, 현금을 세어보니 4500원에서 200원이 부족했다. 200원 있냐고 물어보기가 민망스러웠다. 또래끼리는 4500년 한민족의 전통을 고수하듯 카드를 받지 않았다. 그래 우리민족은 4500년간 식당에서 카드를 받지 않았다.

 

 민족의 정체성을 존중하기 위해, 가는 길에 은행에서 현금을 찾았다. 수수료가 800원이 나왔다. 1000 대 1로 화폐개혁을 해야 한다는 말도 나오는 요즘, 100원 단위는 얼마나 무가치한가. 기어코 순손실 1000원을 만들고 말았다. 이왕 현금을 더 마련한 김에 후배의 것까지 내가 내주었다.

  밥을 먹고 헤어지고 집에 돌아오는 버스를 타는데, 아침의 일이 생각이 났다. 도서관에서 인생 빌리기. 낮 동안 신경을 못썼더니 벌써 오래전 일 같았다. 정 생각이 안 나면 이 문장만을 가지고 새로 소설을 짜 보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하며 자리에 앉으려는데 아침에 떨어트린 200원이 발밑에 있었다. 용케도 다른 사람 손에 휩쓸려가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쥐 죽은 듯 조용히 있었을까. 아우성쳤지만 아무도 보아주지 않았을까. 교수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생각이 났다. 도서관에서 중국의 작가 위화의 소설 <인생>을 빌려오라는 교수님의 심부름이. 전화를 받아야 할지 망설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