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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중의 삼국지연의, 어디까지 사실? 어디까지 구라?

ㅡ나관중의 삼국지연의, 어디까지 사실? 어디까지 구라?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 30주년에 발 맞추어 올해 12년 10일 발매되는 삼국지 13. 삼국지13은 삼국지 11 이후 9년만에 한국어판으로 발매된다고 합니다. 코에이 삼국지는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요. 이 삼국지연의가 줄임말로 삼국지로 통하고, 삼국지를 다룬 것들 중 가장 유명하면서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실제 역사, 즉 정사의 영역을 침범하기까지 하고 있죠.





이러한 문제를 인식한 중국 산동대학교(산둥대학교, Shandong University, 山東大學校) 교수 서전무(바이두 백과사전 링크)가, 나관중의 삼국지와, 250여 종의 방대한 관련 문서를 교차검증해 정사와 소설의 차이를 분명히 했습니다. 번역에는 정역 삼국지 출판과 정원기삼국지연구소 운영을 비롯 여러 삼국지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아시아대학교 교수 정원기가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지 상식 100가지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686975&cid=42991&categoryId=42991


전문은 위의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그 중 몇가지를 아래서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각 질문의 제목에는, 상세한 설명이 포함된 원문 링크가 있습니다.





1. 도원결의는 진실인가 허구인가?

-기본적으로는 허구이지만 역사적인 흔적도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복숭아 나무 이야기와 관련하여 문서에 기반한 증거를 찾기는 어렵지만, 세 사람의 관계가 친형제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2. 유비, 관우, 장비 중 누가 제일 나이가 많은가?

-삼국지연의에서는 의용군을 모집하는 방을 내걸 때 유비의 나이가 28세였고, 그 후 의형제를 맺어 큰 일을 도모 했을 때, 유비를 맏형으로, 관우를 차형으로, 장비를 막내로 정한 것으로 나옵니다. 앞서 도원결의가 허구임을 밝혔듯, 도원결의에서 서열 정리는 무의미함을 두 번 말 해 입아프겠죠. 여러 사적을 살펴보면, 결론적으로 세 사람이 처음 모였을 때의 나이는, 유비 24세, 관우 25세, 장비 20세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이 유비를 형으로 모신 것은, 이 때 이미 군신, 임금과 신하의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일리가 있습니다.



3. 관우의 진짜 무기는 무엇이었을까?

잘 알려진 유비의 무기는 쌍고검(자웅일대검), 장비의 무기는 장팔사모, 그리고 관우의 무기는 82근의 무게로도 유명한 청룡언월도입니다. 냉염거라고도 불리는 청룡언월도, 그러나 원래의 삼국지에는 전혀 언급이 없다고 합니다. 청룡언월도는 베는 무기인데, 백마전투에서 조조를 도와 안량을 처치할 때의 묘사로, 찌를 자(刺)자를 사용한 것도 청룡언월도가 허구라는 것을 뒷받침하죠. 또한 다른 역사적 기록을 확인할 때, 관우가 활약한 삼국시대에는 아직 이런 종류의 무기는 발명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황충의 대도, 위연의 대도, 서황의 대부, 황개의 철편, 북해 태수 공융의 무안국이 사용한 철추, 만왕 사마가가 사용한 철질려골타, 여포의 방천화극, 모두 나관중에 의해 쥐어진 무기라네요.


20. 유비는 과연 황숙이었는가?

삼국지 좀 봤다 하는 사람들에게는 유현덕, 유황숙이라는 호칭이 어색하지 않죠. 삼국지선주전에 의하면 유비가 중산정왕 유승의 후손이라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저자(서전무)의 견해로는, 그 후손이라는 이유만으로 황숙이라 불리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황제의 방손이나 지손, 그러니까 직계 후손이 아닌 사람까지 따지면 어마어마하게 많을거라는 이야기죠. 그렇다면 항렬이 황제보다 한 대 앞서는 황숙, 두 대 앞서는 황야로 불리는 사람이 넘쳐나야 옳습니다. 저자는 황숙이라는 아름다운 호칭이야말로, 나관중이 유비에게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해 덧칠해 준 황금 가루라고 이야기합니다.


56. 풀단 실은 배로 화살 10만 개를 빌렸는가?

적벽대전 전야의 명장면입니다. 주유가 제갈공명, 제갈량에게 열흘 안에 10만 개의 화살을 만들어낼 것을 요구하자, 제갈량은 흔쾌히 승낙하며 오히려 사흘 안에 만들어주겠다고 호언장담하죠. 이에 분개한 주유는 10만개의 화살을 만들지 못할 경우에는 목을 바치라고 합니다. 하루, 이틀, 화살은 만들 생각도 안하는 제갈량을 보며 사람들은 애가타는데, 사흘 째 되는 날 새벽, 노숙 등을 대동한 제갈량은 20척의 풀짚을 실은 배를 타고 조조 진영에 접근합니다. 놀란 조조는 궁수들과 노수들을 총동원해 화살을 퍼붓죠. 그 화살은 풀짚에 박히고, 제갈량은 거기서 10만개가 넘는 화살을 얻습니다.


제갈량의 신묘한 계책을 보여주는 이 놀라운 이야기,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삼국지오주전에서는 조조군과 손권군이 대치할 때, 손권이 큰 배를 타고와 전황을 살펴보는 중에, 조조가 궁노수를 동원해 화살 세례를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화살이 배에 가득 꽂혀 배의 무게 중심이 기울 지경이 되자, 손권은 배를 돌려 반대쪽으로 화살을 받게 했다고 하죠. 주인공은 손권이고, 일부러 꾸민 계략도 아니었고, 풀단도 없었습니다. 장소도 적벽강이 아니었을 뿐 아니라 시기도 적벽대전 5년 후였죠.


이 일을 삼국지평화에서는, 주유로 주인공을 바꾸고, 의도한 계책으로. 나관중은 삼국지연의에서 기이한 꾀로 공명이 화살을 빌렸다며 제갈량의 캐릭터성을 공고히 하는데 사용합니다.


95. 관우의 뼈를 깎아 독을 치료한 사람은 화타인가?

신의라 불리는 전설적인 명 의사, 화타. 관우가 양성을 공격하다 오른쪽 어깨에 독화살을 맞았고, 화타가 독이 퍼진 관우의 팔을 째고 뼈를 긁었지만, 관우는 신음소리 한 번 내질 않고 바둑에만 몰두하였다는 이야기도 꽤나 유명하죠. 관우가 독화살을 맞고 태연히 치료한 것은 사실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 수술을 집도한 의사가 화타였을까요? 화타는 건안 13년(서기 208년) 조조에 의해 살해당했습니다. 삼국지연의에서 화차가 관우를 치료한 것은 건안 24년이였죠. 이것이 허구임을 밝히는 증거입니다. 또한 화살도 왼쪽 팔에 맞았다고 합니다. 나관중이 일을 더 드라마틱 하게 만들기 위해 주로 사용하는 팔인 오른팔로 바꾼 것이죠.


111. 제갈량은 5로대군을 가만히 앉아서 평정했는가?

유비가 사망하고 그의 아들 유선이 제위를 계승했다는 소식을 들은 조조의 아들 조비. 그는 사마의의 건의를 받아들여, 5로대군을 편성해 촉을 칩니다. 선비국의 국왕인 가비능을 불러 서평관을, 남만왕 맹획으로 하여금 익주와 영창을, 동오는 청해 양천의 협곡을, 항장 맹달에게는 상용으로부터 한중의 서쪽을, 조진에게는 양평관을 나와 서천으로 진군하라고 명합니다. 각각이 10만 명의 군사인 50만 대군이었죠.


유선은 크게 놀라 제갈량을 찾지만, 제갈량은 이미 4로의 대군을 물리칠 방도를 강구한 뒤였습니다. 마초의 기병을 매복시켜 가비능의 침입을 막고, 위연에게는 가짜 미끼를 쓰는 위장전술로 맹획을 막게하고, 맹달과 친한 이엄의 필체를 흉내낸 편지로 맹달을 잡아두며, 상산 조자룡, 조운으로 하여금 조진을 막도록하는 전략이었죠. 관흥과 장포에게는 대기하고 있다가 각 로의 군사들을 지원케하는 보험까지 들어놓았습니다. 동오는 백묘 등지를 파견해 말로써 우호관계를 회복시킵니다.


촉의 위기를 넘긴 제갈량의 계책, 사실일까요? 제갈량의 전략은 커녕, 5로대군이 촉한을 공격해 온 일도 없었다고 합니다.


135. 장수와 장수의 맞대결이 실제로 있었는가?

대장전(일본식 한자어로 일기토라고도 하는)은 삼국지의 재미 중 하나입니다. 뛰어난 싸움이 될 수록 수만명의 병사들을 엑스트라로 전락시키며, 장수들의 영웅적 면모를 더욱 부각시키죠.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가 봉선 여포와 겨룬 것, 황충과 관우가, 허저와 마초가, 장비와 마초가 맞대결을 한 것 등이 유명합니다. 그러나 전략적으로 중요한 장군을 사지로 보내는 이런 싸움은 실제로는 일어나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오히려 최우선 보호대상이였죠. 그래도 가끔씩은 영웅들 간의 전투가 벌여졌다고 합니다. 꼭 서로 상대했다기보다는 난전 중 한 쪽이 상대방을 처치한 것이 더 많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