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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siquetan 보듣만고생/그리고생각한것들

우리는 왜 책을 읽지 못하는가, 킬링타임 학살자 인터넷

ㅡ우리는 왜 책을 읽지 못하는가, 킬링타임 학살자 인터넷


저는 그래도 꽤나 책을 좋아하는 인생을 살았었습니다. 책이라면 가리지 않고 읽었고, 책 좋아하는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책을 다 읽기 전에는 밥 먹는 것도 거부했었죠. 그러나 그것도 이제는 예전 이야기라고 해야할 것입니다. 수백권의 책이 아직도 버킷리스트에 담겨져있고, 이따금 수십만원어치의 책을 구매하지만, 책을 읽는 것이 너무나도 힘이듭니다. 읽어야만했던 전공서적과, 업무상 읽었던 책들을 제외하면 자신있게 책을 자주 본다고 말하기가 어렵군요. 


하나의 일관된 생각을 긴 시간동안 지속하는 것, 즉 책 읽기가 이제는 불가능하게된 것이 아닌가하는 두려움도 있습니다. 책을 읽다가 컴퓨터를 켜고, TV를 켜고, 스마트폰을 켜고 새로운 자극을 찾습니다. 저는 정보 자극 중독입니다.


한국일보, 인터넷은 시간포획장치… 페북서만 한국인 시간 月 1만5000년 빨아들여 (2015.10.04)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469&aid=0000093690&viewType=pc


'아이클라우드(iCloud)의 기본 저장 용량은 5기가바이트(GB)다. 5분짜리 MP3 파일로만 채우면 약 1,000곡 분량, 80시간 분량. 그 데이터를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 우리에게 있긴 한 걸까?'


기사에 따르면 페이스북의 전 세계 사용자 수는 14억 4천만명(2015년), 한국의 실 사용자수는 1500만명(월평균), 그리고 이들이 한달동안 페이스북에서 보내는 시간은 9시간(월평균), 계산하자면 한국 국민은 매달 토탈 15410년의 시간을 페이스북에서 보내는 것입니다. 페이스북은 인터넷을 통해 할 수 있는 여러가지 중 고작 일부입니다. 인류 역사상 그 어떤 매체보다도 가장 많은 시간을 빼앗고 있는 것이 인터넷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터넷, 디지털, 사이버 세상. 개인적으로는 이런 단어들로 그것들을 묶어서 서술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하는 모든 것을 아날로그, 현실 세상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서 말하지 않듯이, 그쪽 세계는 현실만큼이나 다양한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죠. 우리가 박지성을 스포츠선수, 운동선수라고 부르기보단 축구선수라고 부르는 것처럼, 페이커 이상혁은 프로게이머가 아니라 프로-리그오브레전드플레이어로 불려야합니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그쪽 세계'는 어쩌면 물리적 제약을 넘어 현실보다 더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만큼 많은 정보의 자극이 우리를 그쪽 세계에서 허우적대다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현실의 활동과 인터넷기반의 활동, 그차이를 정보의 연결성과 단절성에서 찾고 싶습니다. 


책과 페이스북을 비교해볼까요? 

책은 글쓴이의 오래된 생각을 체계적으로 기술해놓은 것입니다. 모든 정보는 하나의 맥락아래 연결되어 있습니다. 독자는 그것을 온전히 읽는데 수시간이 필요하며, 텍스트로부터 전달된 정보를 가지고 나름의 해석과 재구성을 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페이스북은 뉴스피드라는 페이스북의 선별 기준에 따라 정보를 나열하고 있지만, 각각의 정보는 전혀 맥락이 없습니다. 수 초 사이에 계속해서 신정보가 들어옵니다. 이용자의 뇌 속에서 빠르게 수용된 정보는 곧 자극성을 잃고 무뎌지고, 이용자는 새로운 자극을 찾아 스크롤을 이동합니다. 연결성이 없는(단절된) 정보들이 짧은 시간 동안 끊임없이 이용자를 자극합니다.


현대인들은 이러한 자극에 중독되어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짧고 강렬한 자극이 없다면 어색함을 느끼고 다른 자극을 갈구하죠. 얼마전 웹드라마의 플레이타임이 매우 짧아야한다는 내용이 있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직접 말하기의 가치, 디시 힛갤만화 그때일, 72초드라마(링크)). 디지털 자극이 없는 현실세계에서의 독서활동에도 새 자극의 유혹이 있는데,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는 환경에선 그 유혹이 더욱 강하기 때문이죠. 


책을 읽기가 어려워진 것은 이것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하나의 맥락에 온전히 집중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스압(스크롤의 압박, 스크롤이 길 정도로 웹페이지가 길다)이라는 머릿말이 달리는 게시물의 길이가 점점 짧아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길지 않아도 [스압]이라는 말머리가 달립니다. 글이 열줄만 되어도 세줄요약이 없으면 '좋은 글이군요, 하지만 읽지는 않았습니다.'라는 댓글이 달립니다.


디지털치매라는 말이 있죠. 디지털 기기를 자주 사용할 수록 나이에 관계없이 치매 증상을 보인다는 주장입니다. 이 주장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위에서 언급한 디지털 정보의 특징과 맞물려, 저는 디지털 세상이 기억력 감퇴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기억 시스템은, 사건 전체를 차례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몇가지 포인트를 기억하고 그것을 평소의 사고방식에 따라 재구성하는 방식을 취한다고 합니다. 같은 사건을 두고도 각자의 기억이 다른 것은, 그리고 서로 자신의 기억이 맞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런 점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디지털 세상에서 만난 정보들은 도저히 엮을 수 있는 맥락이 없습니다. 오늘 당신이 페이스북에서 본 글들을 몇개쯤 기억해낼 수 있을까요? 저는 하나만 기억해내도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얼마전 본 영화 내용의 줄거리를 기억해낼 수 있는 것과 차이가 있죠.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어디를 클릭하려했지? 내가 뭘 검색하려 했지?하는 기억상실증에 걸리는게 아닐까요.


밥 먹는 시간을 잡아먹었던 책 읽기처럼, 아니 그 보다 더 심하게, 인터넷에서의 정보 자극은 밥 먹는 시간, 책 읽는 시간, 대화하는 시간, 심지어는 잠자는 시간까지도 갖지 못하도록 우리를 쿡쿡 찌르고 있습니다. 킬링타임이 아니라, 시간의 학살자입니다.


그런 인터넷에서도, 자극도 덜하고, 횡설수설하며, 길기만한 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