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masiquetan 보듣만고생/그리고생각한것들

에피쿠로스, 악의 문제, 그리고 나홍진의 곡성

ㅡ에피쿠로스, 악의 문제, 그리고 나홍진의 곡성


-악의 문제

1.신은 모르는 것이 없다. (전지)

2.신은 악을 거부한다. (지선)

3.신은 못하는 것이 없다. (전능)

4.세상에는 악한 행위가 존재한다.(악의 존재)

5. 1,2,3,4가 모두 참이라고 가정하면 모순이 발생한다. 1,2,3,4 중 최소한 하나는 거짓이다.


신은-

악을 막을 의지는 있으나 / 악을 막을 능력이 없다 -> 전능하지 않음

악을 막을 능력은 있지만 / 악을 막을 의지가 없다 -> 선하지 않음

악을 막을 의지도 있고 / 악을 막을 능력도 있다 -> 악이 존재하지 않아야함 -> 그러나 악이 실재함

악을 막을 의지도 없고 / 악을 막을 능력도 없다 -> 신이 아님

-에피쿠로스(BCE341?~BCE270?) 그리스 헬레니즘 시대의 철학가




나홍진 감독의 2016년작 곡성(哭聲, The Wailing, The Stragers)

(곽도원, 황정민, 천우희, 쿠니무라 준, 김환희)



절대 현혹되지 마라, 미끼를 물었다는 카피를 내세운 영화로, 한 시골 마을에서 벌어진 토속신앙(넓게는 오컬트)을 소재로했다.


선과 악이 존재하는가, 신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명쾌한 답변이 불가능한 것처럼,

영화에서는 외지인(쿠니무라 준), 일광(황정민), 무명(천우희) 를 선 혹은 악으로 판단할 근거가, 그들을 속세를 초월한 존재라고 여겨야할 근거가, 우리 편인지 적인지를 판단할 근거가, 그들의 지시를 따라야할 근거가 빈약하다.


해리포터처럼 지팡이 들고 뿅 했더니 불빛이 나왔다고 해도, 그것이 인과 관계로 묶여있는지는 따로 검증을 해야하지만,

영화에서는 행위와 결과의 시간과 장소가 분리되어있으며, 동시간 동장소라고 하더라도 외부에서의 개입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인과로 묶기가 더욱 어렵다.


모든 일들이 실제로 행해지고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하더라도, 그리고 그걸 진짜 현장에 가서 다큐 찍듯이 찍었다고 하더라도,

어떤 사건을 먼저 보여주느냐, 어떤 사건을 뒤에 붙이느냐, 어떤 사건을 강조하고 어떤 사건을 가리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인식은 달라질 수 있다.


정말 존재하고, 초월적이고, 실제로 선과 악으로 나뉘어 있을 수도 있지만,

그저 환각이나 정신착란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고,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기 식 우연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들은 정말 초월적 존재인가? 그들은 선이고 악인가? 그들은 우리 편이고 적인가?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영역에 대해 올바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지인이 뿔달린 악마를 보았다는 이야기를 하면 그 이야기를 믿을 것인가? 본인이 직접 뿔달린 악바를 보았다면, 본인은 본인이 본 것을 믿을 것인가?



우리가 제3자의 시각에서 영화 밖에서 영화 안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의 시각에서 영화 안에서 존재한다고 한다면,

정말로 사람들이 미쳐가고 죽어가는 상황에서 차분히 변인 통제하고 저것들을 검증하고 있을 형편은 되지 않을 것이다.

종구(곽도원)의 태도가 이야기가 진행되며 바뀌는 것처럼.


그렇다면 먼저 해야할 것은, 전지전능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나(우리)보다는 큰 능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에 대한 인정과 받아들임일 것이다.


그 다음 오는 문제는 여러 초월적 존재 중 누구를 믿어야 하는가이다.

믿어야할 대상을 믿는 것은 순응이고, 그렇지 않은 대상을 믿는 것은 현혹이다.


일광과 무명은 모두 자신을 믿으라고 한다. 아무런 근거 없이, 믿지 않으면 일이 잘못될 것이라는 협박만 하면서. 거기다 일광은 무명을, 무명은 일광을 믿지 못할 존재라고 한다.


그들이 선인지 악인지, 아니면 선도 악도 아닌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믿지 못할 것을 믿으라고 강요한다.

왜 초월적 존재가 믿어야할 근거를 그렇게 명쾌하게 내놓지를 못할까.


우리 고전이나 설화, 전래동화등을 보아도 그렇다, 초월적 존재가 제시하는, 어기지 말아야할 '금기'에 대해 따라야할 타당한 이유는 없다.

그야말로 뜬금포.

옛 이야기에서는 그것을 따르지 않으면 화를 입고, 따르면 복을 받는 결말로 이어지지만,

악이라고 해서 그것을 못할 것은 무엇이며, 곡성처럼 두 존재가 상반되는 이야기를 하면 누구를 따라야하나.


확실한 이유가 있다면 알려주지 못할 이유가 없고,

우리가 이해 못할 이유라면 그들이 전능하지 않다.

전능하지 않으면 절대적으로 따라야할 존재도 아니다.(선이 아니다)


나는 그들이 우리를 초월하긴 했지만, 전지전능은 아니며, 선도 악도 아니고, 우리편도 적도 아닌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듯, 그들이 하는 싸움의 도구로서, 우리는 고통받는 것이 아닐까.